2009. 10. 19.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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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 2막] - 실크로드의 지리환경
실크로드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초장거리 육상교역로입니다. 때문에 그 긴 거리 만큼이나 다양한 환경과 문화, 종족이 혼재되어 있는 매력적인 곳이지요. 하지만 실크로드의 곳곳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캐러반(실크로드를 이용하던 낙타 대상_大商)의 교역은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반대로 사막 한가운데 싸늘한 주검만을 남기고 끝날수도 있었습니다.
일단 무사히 지나갈수만 있다면 일확천금을 꿈꿀 수 있는 매혹적인 교역로. 이 길을 위험하게 만드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인재_人災 : 실크로드를 습격하는 기마민족들. 약탈은 어느 정도 세력만 갖추고 있다면 별 노력없이 재물을 획득할 수 있는 유용한 방법입니다. 이에 대해 캐러반은 일정한 무력을 갖추는 것으로 안전을 지켜 갔습니다.
2)천재_天災 : 사막의 모래폭풍, 낙석, 식량고갈 등. 험한대다가 시시때때로 변하기까지 하는 자연환경이야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지요. 캐러반들은 교역행 중 종교의 힘을 빌어 무리의 안녕을 기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불교의 경우는 캐러반들의 시주로 사원이 지어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시안에서 카슈가르에 이르는 길은 실크로드의 동편에 해당됩니다. 지형도를 보면 정말 어떻게 길이 생겼을까 싶을정도로 험하기 그지없습니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산맥과 거대한 크기의 사막으로 가로막힌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서역의 대상들은 험준한 이 길을 지나 장안(시안)으로 들어갔지요. 본고에서는 이 지역을 중심으로 한 실크로드의 지리환경을 사진과 곁들여 살펴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이 지역의 지형도를 한번 살펴보죠.
우측 하단에 A라고 표시되어 있는 곳이 바로 장안(현 시안)입니다.
1)붉은선 : 타클라마칸 사막입니다. 한반도보다 넓은 대형 사막이구요. 때에 따라서는 해수면보다 낮은 곳도 있습니다. 영어로는 'Takla, Makan Desert'라고 표기하는데, 이는 위구르어로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기후는 매우 건조해서 1년 내내 비가 거의 오지 않습니다. 혹한혹서에 모래 폭풍이 심해서, 살기는 커녕 지나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2)푸른선 : 곤륜산맥(혹은 쿤룬산맥). 해발 5000m가 넘는 봉우리가 삐죽삐죽 솟아있습니다. 천산산맥과 함께 타클라마칸사막을 남북으로 감싸고 있죠.
3)초록선 : 천산산맥(혹은 텐산산맥). 해발 3500~4000m. 역시 곤륜산맥과 함께 타클라마칸 사막을 감싸고 있습니다.
4)분홍선 및 분홍 빗금 : 분홍선은 카라코람 산맥, 빗금은 파미르 고원입니다. 실크로드에서 이 지역을 넘어가면 불교의 발상지인 인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19 ~ 20세기초 까지는 러시아를 견제하려던 영국 스파이들의 침투로이기도 했습니다.
지형도와 실크로드를 겹쳐놓은 지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설명드린 지형이 다 나오고 있네요. 오아시스 남도이니 하는 실크로드의 상세 루트는 다음편에 소개해드리죠.
여튼 어마어마한 이익이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사람이 다니기에는 눈물겹게도 험한 길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자 그럼, 윗 지역의 지리환경을 좀 더 상세히 살펴보도록 하죠.
1. 사막
사진의 윗쪽 절반을 차지하는 연한 갈색의 지역이 바로 타클라마칸 사막입니다. 군데군데 보이는 흰색 지형은 만년설, 즉 눈으로 덮인 곳이죠. 사막은 인간의 생존률이 제일 떨어지는 환경입니다. 게다가 타클라마칸 사막의 경우는 유라시아대륙 깊은 곳에 위치하기에 추위와 더위는 말할 것도 없지요(연교차 : 45도 ~ 영하 25도).
정말 황량하죠? 사막에서 보이는 변화라고는 심술궃게 불어재끼는 모래폭풍이 사구(모래 언덕)의 위치를 바꿔놓을 때 뿐입니다.
다음은 <삼장법사전>에 나오는 타클라마칸 사막에 대한 묘사입니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인적은 물론 하늘을 나는 날짐승도 없는 망망한 천지가 벌어지고 있을 뿐이다. 밤에는 요괴의 불이 별처럼 휘황하고 낮에는 죽음의 바람이 모래를 휘몰아와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 두려운 줄 몰랐다.
다만 물이 없어 심한 갈증 때문에 걸을 수조차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5일 동안 물 한 방울 먹지 못하여 입과 배가 말라붙고 당장 숨이 끊어질 것 같아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다. 여윈 말에 몸을 신고 가다 모래위에 엎드려 관음을 염한 덕에 겨우 살아남았다."
해수면보다 낮은 곳이 있을 정도로 타클라마칸 사막은 저지대입니다. 그리고 사막의 남북을 곤륜산맥과 천산산맥이 감싸고 있죠. 완벽한 분지지형인 것입니다. 두 산맥은 해발고도가 정상부근은 1년의 전부를 눈에 덮여있습니다. '만년설_萬年雪'이나 '설산_雪山'으로 불리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죠.
사막에서 바라본다면 이런 모습이구요.
3. 오아시스
산맥의 능선을 넘기에는 너무 고지대입니다. 운송도 배나 힘들죠. 사막을 지나기에는 준비할 것이 너무 많고, 생존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형도와 함께 그려진 실크로드 루트를 살펴보면 길은 사막과 산맥의 경계선 부근에 형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빙 두르는 길이 실크로드로 선택된 이유는 이 부근에 자연발생적 오아시스가 생성됐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그림이 없기 때문에 글로 설명해야 하네요ㅠ.ㅠ)
1) 여름이 되면 산맥의 만년설이 녹는다.
2) 녹은 물은 중력의 법칙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주로) 협곡지형을 따라 흐른다.
-> 곤륜산맥의 배후지역, 즉 산맥의 남쪽은 티벳 고원이기 때문에 물은 자연스럽게 타클라마칸 사막 방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 천산산맥의 경우 남북방향으로 협곡지형이 발달했기 때문에, 녹은 물의 상당수가 타클라마칸 사막 방향으로 흐른다.
3) 산맥과 사막의 경계지역은 오랜세월 풍화작용과 낙석이 반복되면서 돌무더기층이 형성되어있다. 물은 자연스럽게 이 지점에서 복류하고, 돌무더기층과 불투수지층(사막의 사암층)사이를 흐른다.
4) 사막 내부로 들어갈수록, 돌무더기층을 형성하는 암석의 크기는 작아진다. 그 끝자락에서 복류했던 물이 솟아오른다.
5) 1~4의 싸이클이 반복되면서 오아시스가 형성된다.
캐러반들이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오아시스가 산맥과 사막의 경계면에 열을 지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아시스와 또 다른 오아시스를 잇는 길이 모이고 모여 실크로드를 이루게 된 것이죠. (본편에서 설명하겠지만) 만년설이 녹은 오아시스의 규모는 상상 이상입니다. 고대 서역국가들을 '오아시스 국가'라고 지칭하는 것은, 오아시스가 가져다주는 풍부한 산물때문이지요.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투르판은 고대에나 지금이나 대표적인 오아시스 도시입니다.
고대 기록에서는 오아시스의 풍요로움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있지만, 현재는 이런 모습을 보기 어렵습니다. 오아시스의 규모가 줄고 있는 것인데요. 사막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리즈의 본편에서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입니다.
전형적인 오아시스의 모습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 작은 호수와 목초지가 펼쳐져 있네요.
오아시스의 존재로 해택을 입은 것은 캐러반 뿐만이 아닙니다. 오아시스 주변에 펼쳐진 초지로 인하여 목축과 농업이 가능해지고, 사람이 몰려들게 되죠. 상인의 거점이 점점 도시로 변모해 간 것입니다.
4. 초원
천산산맥의 북쪽으로 난 실크로드(천산북로 혹은 텐산북로)는 이른바 초원길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실크로드에 포함된 교역로의 하나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고대 인도유럽어족의 이동이나 흉노족의 이동에 이 길이 이미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많은 기마민족들이 유목을 위해 애용했던 길입니다.
본고의 첫 사진자료를 보면, 천산산맥과 키르키스 산맥 사이에 주변 지역보다 더 짙은 녹색으로 표시된 영역이 있습니다. 이 지역이 바인부르커 초원입니다. 야생마의 원산지이기도 하고, 수량이 많고 초지가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지금도 많은 유목민들이 목축을 위해 찾는 곳입니다.
1) 호양나무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종_樹種입니다. 포플러나무라고도 하구요, 험한 환경에서도 잘 자랍니다. 위구르 사람들은 호양나무를 일컬어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누워서(쓰러져서) 천년' 요렇게 삼천년을 산다고 합니다.
살아있는 호양나무.
죽은 호양나무.
훌륭한 내구성을 지닌 호양나무. 덕분에 고대 오아시스 국가의 유적지에서 호양나무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은 무척 쉽습니다.
2) 포도나무
의외죠? 타클라마칸 사막의 대규모 오아시스 지역에서는 약 2000여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조량이 많고 건조하기 때문에 과일의 당 함유량이 다른 지역보다 높습니다. 포도재배에 필요한 물은 오아시스에서 끌어오는거죠. 실크로드상에 있었던 도시 투르판은 지금도 손꼽히는 포도산지입니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포도축제도 열고 있지요. 예나 지금이나 포도는 중요한 교역품(혹은 상품)입니다.
오아시스는 사람들과 동물들에게 축복 그 자체입니다. 이 황량한 지역 한 가운데서 포도농사라니요ㅋㅋ
6. 동물
1) 말, 양
말과 인간의 결합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마_騎馬의 습득으로 인간의 활동영역(혹은 이동거리)가 비약적으로 늘어났으며, 전투에서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기마병은 총포의 발달 이전까지 육상전에서 제일 위협적인 병종_兵種이었다). 그뿐인가? 말은 훌륭한 운송수단입니다(후에 수레와 말이 결합됨으로 말의 운송능력은 다시 한 번 발전한다).
말이 인간 생활의 질을 개선시켰다면, 양은 인간에게 절실히 필요한 소모품을 제공했습니다. 양은 유목민에게 훌륭한 단백질을 제공했으며(고기, 젖, 버터 등의 유제품), 가죽과 털로 의생활을 책임졌습니다.
지금도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많은 유목민들은(주로 몽고족이다) 목축을 생계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그 근거지는 천산북로를 중심으로 하는 실크로드 초원지대입니다.
캐러반의 주인공은 낙타입니다. 말도 대상단을 책임질 수 있는 운송능력과 기동성을 보유했지만, 사막을 지나야 하는 실크로드 대상들에게는 말보다 낙타가 더 적합했던 것입니다. 낙타의 신체구조 자체가 건조한 지역에 특화돼있고(낙타의 혹은 지방으로 이루어졌는데, 수분섭취가 줄어들면 혹의 지방을 분해하여 체내에 수분과 에너지를 공급한다), 높고 갈라진 발굽은 사막에서의 모래더미로 인해 이동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최대한 방지해줍니다.
3) 야크
곤륜산맥 남쪽의 티벳고원에 사는 소수 유목민족(티벳족)들은 생필품이나 식량의 확보를 위해 오아시스 도시들(혹은 한족 국가)과 교역했습니다. 이들의 교역에 사용되는 든든한 짐꾼이 바로 고산지대에 서식한다는 야크입니다. 혹한을 견딜 수 있도록 다리는 짧고 튼튼하며, 온몸이 긴 털로 뒤덮여 있습니다.
7. 마치며...
실크로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이 길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치열해집니다. 서역인(혹은 서역상인), 한족(중국 통일국가), 유목민(몽고, 티벳)이 그들입니다. 교역과 전쟁을 통해 상품 뿐 아니라 문화와 종교가 교환되고, 서로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단순한 교역로로 볼 수 없는 것은 이런 까닭입니다.
글의 말미에 정리한 실크로드의 동물들은 실크로드를 둘러싼 세 주인공을 의미합니다(낙타 - 서역인, 야크 - 유목인, 말 - 한족). 인류역사상 제일 험한 지형에 아로새겨진 교역로, 이 길을 둘러싼 문화의 심포니를 들려주는 것이 필자의 의도입니다.
아직 여행 준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장안에서부터 실크로드를 따라가며, 그 길을 구획별로 세분화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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