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17.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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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 1막] - 실크로드의 정의
비단길. 동방에서 서방으로 간 대표적 상품이 중국산의 비단이었던 데에서 유래하는데 서방으로부터도 보석·옥·직물 등의 산물이나 불교·이슬람교 등도 이 길을 통하여 동아시아에 전해졌다.<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아마 중고등학교 역사나 지리시간에 많이 들어봤겠죠? 실크로드는 고대 동서교역로 입니다. 그리고 동서교역의 거점은 장안(현 중국 시안_西安)과 로마(현 이탈리아)로 보고 있죠. 하지만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장안을 넘어 신라와 일본까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총 길이는 대략 6,400km에 육박합니다. 어마어마하죠? 교과서에서 많이 보셨죠?ㅋㅋㅋㅋ 실크로드는 비단길(Silk Route)로도 불리는데, 이 교역로를 중심으로 한 주요 교역품이 비단인 까닭입니다. 사실 실크로드를 통해 전파된 교역품은 비단 뿐만이 아닙니다. 그리고 역사 문화적으로 훨씬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종교(불교, 이슬람교, 조로아스터교 등)와 예술, 그리고 민족의 이동이 실크로드를 통해 이루어졌죠. 그럼에도 거대한 교역로의 주인공을 비단이 꾀차버린 까닭은 무엇일까요? 비단유물의 보존상태는 상당히 양호합니다 그만큼 비단은 내구력이 좋은 옷감이지요 전국시대즈음부터 중국은 훌륭한 비단생산국이었습니다. 전한 시대부터는 주요 교역품이었구요. 당시 흉노의 압박을 받던 전한은 그들의 훌륭한 기병과 맞상대하기 위해 좋은 군마를 얻어야 했습니다. 한정되고도 귀중한 생산품인 말을 획득하기 위해서 전한은 서역지역의 유목국가들과 교역을 시도했고(이와 관련된 장건의 서역행은 후에 포스트 하겠습니다), 그 와중에 전한에서 제일 귀한 교역품인 비단이 서역으로 건너가기 시작했죠. 그리고 우수한 전한제 비단은 서역상인을 통해 그리스를 거쳐 로마로 들어갑니다. 중국이 비단의 나라로 알려지는 시작이죠. 무위에서 출토된 청동비마상(전한) 무위는 실크로드의 초입인 하서회랑에 속한다 말에 대한 중국인(한족)의 동경은 상상 이상이다 자 그럼 실크로드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서역상인? 중국인? 놀랍게도 독일 출신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1833.5.5~1905.10.6)입니다. 그의 생몰연대를 살펴보니 동아시아가 서양의 침략으로 점점 몰락해가던 그 시기와 묘하게 맞아떨어지네요. 리히트호펜은 1868∼1872년 중국 본토와 티베트 지질조사에 착수하여 조사결과를 책으로 간행합니다. 그 저서가 바로 <중국본토>와 <쓰촨 · 구이저우성>이죠. 이 사람은 뭣하러 지구 반바퀴를 돌아서 중국에서도 그리 험하다는 오지를 들쑤시고 다니며 지질조사를 한걸까요? 다음은 이 시기 청나라와 서양 열강과의 주요 외교분쟁을 정리한 것입니다. 1840년 1차 아편전쟁 1842년 난징조약 1856년 2차 아편전쟁 1860년 베이징조약 열강의 땅따먹기ㅠ.ㅠ 독일은 아편전쟁과 2번의 조약에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습니다. 이 시기 독일은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는 신흥강국이었는데요, 유감스럽게도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등지는 영국과 프랑스가 차지하고 있었죠. 독일이 손댈 수 있는 미개척지는 동아시아 지역이었는데, 영국이 아편전쟁으로 먼저 손을 댑니다. 이어서 후발주자들이 뛰어들고, 독일도 그들 중 하나였지요. 때문에 히트호펜의 중국 지리 연구는 순수 연구를 가장한 청 식민지화의 초기 투자라고 봐야 합니다. 약간 의문스러운 것은 접근성이 뛰어난 동부 해안지대를 놔두고 사천성, 귀주성, 티벳과 같은 험한 오지를 탐사한 것인데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이미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열강들이 동부 해안지역을 장악해 가고 있었다. 2. 독일의 탐사 지역은 프랑스(인도차이나 반도)나 영국(인도), 러시아(내몽고, 중앙아시아)와의 군사분쟁에서 이득을 취할 수 있는 요충지역이다. 3. 철광석이나 석탄 같은 산업시대의 주요 부존자원 확보. 4. 미술품이나 유적지 등 역사, 문화 방면 연구에 대한 기초작업(이는 20세기 초, 르콕 탐험대에 의해 실현됩니다) 약간 곁길 이야기를 곁들였습니다만, 중요한 것은 실크로드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서양인 학자였다는 것입니다. 해와 세기를 이어 쌓여진 서양의 대 중국 인식 = 비단의 나라 이 역사상 제일 위대한 교역로의 이름을 결정짓게 된 것이죠. 글쎄요, 아마 소그드인 대상이었다면 '낙타의 길' 내지는 '대박의 길'로 불렸을지도 모를일이죠. 여튼, 리히트호펜의 연구를 기초로 많은 서양인 학자들이 실크로드 연구에 뛰어듭니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지라 뱃속에 탐욕을 채운 것은 두말할 나위 없지요. 그리고 연구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 주체는 중국 정부에게로 넘어갔지요. 좋은 여행을 위해서는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합니다. 다음편에서는 실크로드의 지리환경을 살펴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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