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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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_ Virginia Woolf
그리고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데 어떤 마음 상태가 가장 적합한가 하는 나의 본래의 물음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 볼 때, 이처럼 민감한 그들의 감수성은 이중으로 불행한 것입니다. 내 앞에 펼쳐져 있는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를 보면서 추측건데, 예술가의 마음은 자기 속에 내재한 작품을 흠 없이 완전하게 풀어놓으려는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서 셰익스피어의 마음처럼 작열해야 합니다. 그 안에 어떤 방해물이 있어서도 안 되고 태워지지 않는 이물질이 끼어서도 안 됩니다.
그러한 마음 상태에 있는 여성을 16세기에 발견한다는 것은 명백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자식들이 손을 모으면 무릎을 꿇고 모여 있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묘비를 생각해보면, 또 여성들이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과 답답하고 어두운 방들이 있는 그들의 집을 기억해 보면, 어떤 여성도 그 당시에 시를 쓸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다소 시간이 흐른 후에 어떤 탁월한 귀부인이 비교적 풍부한 자유와 안락함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름을 붙여 무엇인가를 출판하고는 괴물이라고 여겨질 위험을 무릅쓸 것이라 기대할 수 있겠지요. 레베카 웨스트 양의 "어처구니 없는 여성해방론"을 조심스럽게 피하면서 생각하건데, 남성들은 물론 속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작 부인이 시를 쓰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 대부분 호의적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은 두려움과 증오심같은 이질적인 감정으로 혼란스러워졌으며, 그녀의 시도 그러한 혼란의 흔적을 보였으리라 짐작할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레이디 윈칠시가 있습니다. 그녀는 1661년에 태어났고 혈통으로나 결혼으로나 의심할 나위 없는 귀족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고 그리고 시를 썼지요. 그녀의 시들을 펼쳐 보기만 하면 그녀가 여성의 지위에 대해 분노를 터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영락한 것일까! 그릇된 지배에 영락한.
자연이 빚어낸 바보라기보다 교육이 빚어낸 어릿광대.
어떠한 마음의 진보도 저지된.
우둔하리라 예상되고 설계된 생물.
누군가 더 열렬한 상상력으로 열망에 이끌려
남들 위로 솟아오르려 하면
강력한 반대 당파 끊임없이 나타나,
번영의 희망은 그 두려움에 압도당하지.
확실히 그녀의 마음은 결코 '모든 장애물을 다 태우고 눈부시게 빛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증오와 원한으로 고통받고 분열되어 있지요.
(중략)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위대한 남성 작가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가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램, 브라운, 새커리, 뉴먼, 스턴, 디킨스, 드 퀸시 - 그 밖의 누구든지 간에-는 아직 여성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여성이 그들의 몇 가지 기법을 배워서 자신에게 적합하도록 이용했을 수는 있었겠지요. 하지만 남성의 마음의 무게와 속도, 보폭은 여성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여성은 그들에게서 실속 있는 것을 효과적으로 얻어올 수 없습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모방할 수 없는 것이지요. (중략) 산문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샬럿 브론테는 그 투박한 도구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쓰러졌습니다. 조지 엘리엇은 그것을 가지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지요. 제인 오스틴은 그것을 보았지만 비웃어버렸고 자신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더할 나위없이 자연스럽고 맵시 있는 문장을 고안해 냈으며 거기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샬럿 브론테보다 글 쓰는 재능이 훨씬 떨어지면서도 그녀는 무한히 더 많은 것을 말했습니다. 표현의 자유와 충실성은 예술의 본질적인 부분이므로, 그러한 전통의 결핍과 도구의 결핍 및 부적절함은 여성의 글쓰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심지어 "소설"(이 단어가 부적절하다는 나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용부호를 썼습니다.)이, 모든 형식들 가운데 가장 유연한 이 형식이 여성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어느 누가 감히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여성이 자유로이 팔다리를 사용할 수 있게 되면 틀림없이 그녀는 그것을 부수고 새로운 형태를 만들 것이며 반드시 운문이 아니더라도 자기 내면의 시를 전달할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것입니다. 아직도 출구가 막혀 있는 것은 시이니까요.
나는 더 나아가 오늘날의 여성이 시 비극을 5막으로 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녀는 운문을 사용할까요? 오히려 산문으로 쓰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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