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폐허순례기3 - 돋보기를 들고 시장에 들어서다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0. 28. 21:09
01

저 나이트 찌라시는 도대체 누가 띄어내려 한걸까...
경쟁 나이트 알바생? 동사무소 소속 환경 공무원? 아니면 동네 꼬마들이 심심풀이일까?

그런데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틀 뒤쯤이면 저 자리에 메가패스나 중국성 찌라시가 Ctrl+C & Ctrl+V를 하겠지'

아, 광고의 세계는 치열한 것을... 아흐리다롱디리얄라리얄라
                                                                                                                                                                                                                                  2009.5.24 written by 김종선


00상회, 00마트, 00모텔, 00미용실...

이른바 PR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지명이나 인명을 기반으로 짓던 상점 이름은 고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보다 독창적이고 과감하며 익살스런 이름을 채택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쫄깃한 어감을 이용하거나(입에 착 달라붙는 그런거) 시대의 트렌드를 반영한다거나 언어유희를 적용한다거나 뭐 그런거.

이를테면
이노무스키(모 스키대여점)
KBS MBC SBS에 한번도 방영되지 않은 집(모 냉면가게)
니랩에잠이오냐(모 PC방)
동방신기(모 중화요리집)
그놈이라면(모 라면가게)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모 팥죽집)

기타 등등 5열 종대로 연병장 3바퀴

하지만 지방 상점의 경우는 왠지 지명을 붙이는게 구수한 맛이 있다(대천 조개구이 뭐 이렇게)
지역여하를 떠나서 여기저기서나 볼 수 있는(ex : 터미널 식당) 이름도 있고...

종암동?
사진 왼편의 시장닭집과 같이 보기만 해도 친숙함이 절절히 묻어나오는 그런 이름이 많지만 사진 오른편 즐겨찾기(왠지 거의 모든 종류의 가게에 사용할 수 있을 법한 이름, 놀랍게도 종암동 즐겨찾기는 수선집이다)처럼이따금씩 사파도 있게 마련인데

여러분들은 친숙한게 좋습니까? 기발한게 좋아요?

다음은 독자제보
봉주루(압구정동 짜장면집, J형제 제보)
진짜루(영화 '김씨표류기')
버르장머리(미장원, 패스포트클럽 '꼬-'님 제보)
                                                                                                                                                                                                                                    2009.5.24 written by 김종선

012

삐까뻔쩍한 유흥가가 밀집되어 있는 곳도 아니고 그렇다고 초목산천의 절경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아니건만 시장 어름부터 골목 구비구비에는 심심찮게 소형 모텔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도로를 건넌 시장 반대편에는 떡하니 홀리데이 인 성북이...

모텔 주위엔 정장삐끼 대신 자그마한 관목이나 꽃화분이 장식되어 있는데 어차피 손님들은 대부분 밤에 찾아올텐데 뭐 저렇게까지 해놓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래도 없는 것 보단 나아) 혹시 모텔 침대에서 배때기를 긁으며 낮잠을 청하는 부르주아가 있으려나?

필자는 몇 년전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텔에 들어간적이 있었는데...
영노래방에서 알바를 할 때였다. 인근 옷공장 아지매들이 단체로 와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었다. 인원 편성은 대충 이래보였다 - 일부는 시즈모드 일부는 퉁퉁퉁, 일부는 술에떡떡의술 일부는 그나마 멀쩡

팀원의 결속력이 약했던지 아니면 귀가하는 자식들과 남편에게 야참이라도 챙겨주려는지 비틀거리는 몸을 겨우겨우 이끌고 귀가하는 아지매들, 하지만 아무도 계산은 안하고 가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왠 아지매 한 분이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방으로 들어가보니 왠 처자가 소파에 시체처럼 누워있는데, 왠지 모를 불길한 예감과 늘어가는 심박수
요는 이렇다

- 아지매 왈
1) 미안한데 우린 돈이 없어
2) 그런데 사장님이랑 아는 사이야(당시 사장님 부재중), 오늘 계산된 거는 내일 갖다줄게
3) 근데 얘(쓰러진 처자)가 아흐마리당통얅라리꽦꽉(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을 알려주시면서 그것 땜에 술에 떡이 됐다고 말해주심-_-;;)
4) 그런 사정때문에 오늘 당장 집에 들어갈 수 없어서 모텔에서라도 하루를 재워야 해
5) 근데 모텔비도 없응께, 빌려주면 내일 갖다줄께
-> 아주머니의 간절한 눈빛과 함께 이 귀찮은 상황을 얼른 해결하자는 생각에(스타리그를 보고 있었음ㅋㅋ) 냉큼 수락

하지만 이어지는 한 마디가 나를 무너지게 했다
6) 자네, 힘 좀 쓰는가?

아... 군대에서 벌어놓은 체력 일하면서 다 까먹었는데

 다 큰 처자를 업었다, 완전 뻗어있어서(축 늘어진 상황)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걍 쿨하게 바닥에 팽개치고 싶었...
노래방이 지하였기 때문에(ㅠ.ㅠ) 어찌어찌 지상으로 올라와서 제일 가까운 모텔로 직행, 근데 배정받은 방이 2층(ㅠ.ㅠ) 이를 악물고 방에 들어가 침대에 뉘어주니 등판에 식은땀이 절절...

다행이도 보람스러운 것은 외상 및 모텔비를 다음날 정확이 갖다주셨다는 것이고, 젊은 청년이 고생했다며 만원을 선뜻 쥐어주셨다는 것이다.

난 인생을 배웠다 - 아지매들한테는 무조건 잘해주자, 떡고물이 쏠쏠하다.
                                                                                                                              2009.5.25 written  by 김종선                                                                                            


작정하고 시장으로 들어선 탓인지 이전에는 전혀 시야에 잡히지 않았던 풍경들이 조리개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기묘한 시각정보가 입력되면 적절한 의식의 흐름들이 삽입되곤 했는데, 대부분은 단층처럼 어긋나거나 끊어져서 연결된 하나의 '무엇'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제일 짜릿했던 것은 입력된 시각정보와 무의식에서 부유하던 어떤 기억이 충돌하면서 일련의 느낌으로 이어질때다. 폐허순례기의 글감은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쓰여졌다. 어쨌거나 거의 대부분 시장을_pass by_해왔던 내가 디카라는 돋보기를 들고 이 구석 저 구석을 들쑤시고 다녔다는게 지금 생각해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