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2. 4.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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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를 헬라어(그리스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한다. '이간자, 훼방꾼, 참소자'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원문의 의미에 가깝게 해석하자면 '어떠한 틈새나 사이를 쪼개다' 정도가 된다. 하나님과 그의 자녀인 인간, 그리고 마귀의 역학구도를 감안해서 재해석하자면 마귀가 하는 일이란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를 가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마귀는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도록 훼방하는데는 도가 튼 존재다. 멀쩡하게 잘 살고 있었던 욥을 이간질하는 것만 봐도 견적이 나오지 않는가(욥기 1장 참조).

방공_Air Defence_출신이라 그런지 진지생활을 시작할때면 제일 먼저 사계작업을 실시한다. 적 항공기를 잘 관측할 수 있도록 진지 주변의 시야를 확보하는 일인데, 즉슨 시야를 가리는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는 소리다. 서글프게도 전자동장비(전동톱)이야 중대에서 1대밖에 구비하지 않고 있으니, 대부분은 도끼를 걸머지고 나무꾼 행세를 하는 경우가 많다. 도끼질을 잘 하려면 일정한 리듬감을 살려 허리의 회전력을 이용, 틈을 지속적으로 패야한다. 첫 10여번의 도끼질에 틈을 확보할 수 있다면 360도로 돌려가며 일사천리로 벌목질을 마무리할 수 있다.

틈은 연약함의 상징이다. 틈을 집중적으로 공략할수록 상대는 빨리 굴복한다. 맞은데 또 맞으면 당연히 더럽게 아프지 않는가. 마귀가 짜증날정도로 집요하게 우리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믿음을 잃어버리고 예수님을 떠나기 전까지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틈을 어떤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는가?

아담이 범죄한 이후 최초로 느꼈던 감정은 수치심이다(창세기 3장 참조). 수치심을 느끼는 사람은 그 틈을 바로 가려버린다. 그리고 마귀는 그 틈에 기생하면서 상처를 갉아먹는다. 더 큰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그 틈을 심지어는 하나님에게조차 보이지 않게 하여 그의 은혜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연약함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보이고 은혜를 힘입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가리웠을 경우 마귀의 치밀한 이간질에 의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잘 아신다. 그는 은혜로우시다. 간음 중에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요한복음 8장 참조) 예수님은 그녀의 죄를 사하시기 이전에 사람들을 물리셨다. 여인이 느꼈을 수치심을 거두어주신 것이다. 아담에게도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히시지 않았는가. 그의 은혜앞에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 뿐이다. 그 때 치유와 회복의 역사는 시작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이란 참으로 신묘막측하다. 땀구멍만한 작은 틈일지라도 당당하게 돌진한다. 은혜의 빛도 동일하다 그저 있는 모습 그대로 나 자신을 열면(그것이 지극히 작다 할지라도) 바로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신다. 정말 오랫동안 간절히 원해왔던것처럼 말이다. 틈을 수치심으로 가려버리면 즉시 마귀의 공격거리가 되지만,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갖고 나아간다면 은혜의 사람이 되는 비밀이다. 연약함에 매여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지금은 은혜의 해니...

골목의 틈, 건물 사이의 틈으로 내달리는 햇빛을 참 좋아한다. 그의 은혜가 생각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