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3 – 닿을 수 없었던 북쪽, NOORD
자동차 도로, 보행자 도로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라는 나라의 전역에는 자전거 도로가 구축되어 있다. 그리하여 자전거와 시간만 있다면, (숙박과 식사를 제외하고) 그대는 네덜란드 어느 곳이나 자전거를 타고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쾌청하게 뻗은 고속도로에 안전한 거리를 두고 자전거 도로(네덜란드에서는 fietzpad라고 부른다)가 거미다리처럼 길게 길게 전국에 걸쳐 놓여져 있는데, 자전거 도로도 자동차 도로와 마찬가지로 국도 넘버가 있다. 4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34번 7번 도로로 나뉘어지는 분기점에 이르고, 다시 7번 국도를 타고 주욱 주욱 달린다든가 하는 느낌인 것이다. 그야말로 큰 물병 하나와 두껍게 썰은 치즈 몇 겹, 그리고 DSLR 카메라 또는 연필과 스케치 노트만 챙기면 광활한 도로 가에 세워진 풀 위에 배수(toileten)를 해가면서 무작정 무작정 달려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처음 자전거를 탈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은 거미 다리에 난 터럭만큼도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처음 접하는 새로운 자전거인데다가, 전혀 생소한 교통 시스템 속에 뚱하니 놓여져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얘기인즉슨, 나는 함께 DTS를 하는 동기와 함께 Rijksmuseum(국립박물관)과 Van gogh Museum에 주말 피크닉을 갔다가 또 다른 DTS 학생을 만났었는데, 우리는 트램(tram: 네덜란드의 도시 안을 버스처럼 오가는 전차, 자전거 벨처럼 매우 찔그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좁은 도로와 인파 사이를 뱀처럼 헤집고 다니는 녀석이다)을 타고 왔고, 이 학생은 간사에게 오래된 (오래된, 너무나 오래된) 자전거를 빌려 Kadijksplein(우리 베이스의 이름이다)에서 Museumplein(국립 미술관과 반고흐 미술관이 있는 광장의 역이름)까지 타고 온 것이다.
나는 호기심에 내 트램 티켓과 그 자전거를 오늘 하루만 바꿔 쓰기로 하고 자전거에 Canon 300d와 내 몸을 실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 나에게 자전거를 빌려 준 형의 외침이 들렸다.
‘조심해, 나도 오다가 두 번 정도 죽을 뻔 했어’
처음 타보는 자전거는 내 로망과 달리 매우 낡은 자전거였는데, 오른쪽 고무 손잡이는 아예 빠져서 없었고, 몸체 전체가 녹슬어 각질처럼 칠이 일어나 있는 상태였다. 네덜란드 자전거는 미국이나 한국의 자전거완 달리 backpedal을 밟아야 브레이크가 걸리게 되어 있다. 설명을 듣고 타는데도 처음에는 계속해서 손 앞의 없는 브레이크를 잡으려다가 backpedal을 황급히 밟는 일이 많았다. 또 네덜란드의 자전거 바퀴는 매우 가늘고 지름이 커서, 가끔 급하게 발 브레이크로 땅에 발을 짚으려 해도 발이 잘 닫지 않았다. 또, 속도조절 역시 자연스럽게 backpedal에 브레이크기능이 있으므로 페달을 은근하게 뒤로 하면 (절대 돌리려 해선 안 된다. ‘죽을 뻔 했다’는 상황을 나는 이때 체감하게 되었다) 속도가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나는 자전거를 타고 Museumplein으로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며칠 전부터 암스테르담 지도를 사놓은 나는 한 블록을 지날 때마다 자전거를 세우고 뒷주머니에서 신문처럼 개놓은 지도를 펼치고 여기가 어딘지 확인하며 움직였다. 저 옆으로 운하가 보였다. 네덜란드의 운하 옆으로 자전거를 타고 달리기. 굉장히 낭만적이다. 오래 전부터 꿈꿔온 로망을 나는 체현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횡단보도 앞에 멈춰 자전거 신호등 밑의 버튼을 누르고 자전거 전용 횡단보도로 건너간다. 순조로웠다. 내가 봐도 그림같이 운하 옆을 달리고 있었다. 한참 감상에 젖어 있을 때 즈음, 옆에 녹지가 보인다. 공원이었다. 공원 안을 달려보고 싶어졌다. 나는 미끄러지듯 공원의 입구로 들어갔다. 많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유모차를 끌고,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Patat (네덜란드 후렌치 후라이, 보통 후라이 4개를 합쳐놓은 너비다)를 먹고 있었다. 조깅하는 사람을 따라 물가로 달렸다. 물가가 있는 푸른 언덕, 나는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며칠 전 Waterlooplein 시장에서 산 1유로짜리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을 꺼내 살짝 읽었다. 그리고 수첩에 시편 1편을 적어넣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눕혀두었던 자전거를 다시 세우고 가던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살짝 갈증이 났지만 괜찮았다.
어느 정도 들어서니 조깅 코스인지 양 옆으로 나무와 꽃들이 깔끔하게 조경되어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30분을 달렸을까. 공원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공원 끝까지 달리니 한 시간 여 걸린 듯했다. 좋은 조깅 코스로군, 생각하며 나는 지도를 펼쳤다.
그리고 이곳은 지도에 없었다.
내가 서있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암스테르담이 아니었다. 기차로 한 정거장 거리다. 어떻게 할까. 뒤로 돌아 갈까, 아니면 암스테르담까지 달릴까. 앞으로 가나 뒤로 가나 얼추 비슷할 것 같았다. 아니 이쯤 되면 뒤로 돌아서 가는 것이 더 멀어 보였다. 나는 계속 달렸다. 공원의 녹지는 끝나고 트램의 정거장들이 보이고, 건물들의 숲 속에 있었다. 달렸다. 고가도로가 나오고 고속도로가 보였다. 저 너머로 전력 풍차가 보였다. 하얗고 가늘은 현대식 풍차가 늘어서 있었다. 북쪽. 지도를 보니 저 너머는 NOORD라고 하는 곳 같았다. (NOORD는 영어로 north이다) 북쪽에는 바다가 있을까. 나는 즉흥적으로 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북으로, 북으로. 달리다 버스 정류장이 보이면 멈춰서 버스 노선도와 함께 내가 서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이곳은 암스테르담의 서북부이다. 내가 달리던 공원은 Westerpark로 암스테르담의 서쪽 아래부터 서북쪽으로 시를 벗어날 정도로 길고 큰 곳이었다. 나는 노선을 확인했다. NOORD로 올라갔다가 암스테르담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지도를 보니 IJ-tunnel이라고 하는 것이 NOORD와 암스테르담 사이에 있었다. 이 터널인지 다리인지를 지나면 암스테르담에 가겠군.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넓디넓은 부지에는 거대한 공장들이 늘어서 있고, 자전거 도로, 자동차 도로, 공장, 나무 뿐이었다. 기차 트랙도 있는 듯했다. 나는 계속해서 달렸다. 버거킹을 지나고, 맨션들을 지나고 달리고, 달리고 계속해서 달렸다. 사거리를 지나가는 jogger(조깅하는 사람)이 보였다.
“Hey, where is the Noord?”
“Noord? You can never get the Noord with the bike, because to get Noord, you should go through the tunnel and that tunnel just can be used with cars”
“Not bike?”
“No, I think you should go back with bus. Amsterdam will be very far from here with that bike”
내가 보았던 Ij-tunnel은 해저 터널이었다. Ij는 강이라는 뜻이고 이 터널은 자동차만 지나가는 터널이었다. 결국 Noord는 닿을 수 없는 곳에 놓여져 있던 것이었다. 나는 포기하고 오던 길을 30여분간 돌아오다 아까 만난 버거킹에 들어가 8유로를 주고 햄버거 세트를 사먹었다. 힐끔힐끔 창 밖에 매인 내 자전거를 누가 훔쳐가지 않나 쳐다보면서.
그 후의 이야기는 다 짐작하리라 믿는다. 40분여를 더 달려 Westerpark 공원 길을 1시간여 달리고 처음 들어선 공원입구로 나와 다시 시내를 50분여를 달려 베이스로 돌아왔다. 지쳤음에도 오는 길에 토탈 5시간 정도 연습한 네덜란드 자전거를 나름 능숙하게 몰며 운하와 운하 사이로 달렸다. 이제 교통 시스템, 트램과 자동차, 사람과 자전거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의 흐름 정도는 몸에 익히게 되었다. Backpedal 브레이크도 이제는 매우 능숙하다. 나는 베이스에 도착해 열쇠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물 한 병 정도를 마시고 내 방 침대에 대자로 누워 천장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엄청나게 달렸지만 NOORD에 도달하지 못해 너무 아쉽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