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2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승객들은 탄성과 함께 일제히 박수를 쳤다. 네덜란드 땅을 밟자마자 네덜란드 문화를 접하는 순간이었다. 내 앞사람이 "Welcome to Holland!"라고 외쳤다. 창문 너머로 스키폴Schipol 암스테르담Amsterdam이라는 간판의 건물이 건너편에 보였다. 나는 메시지 바이블과 유럽 여행 책자를 카메라 가방에 넣었다.
요스트와 제니퍼가 우리를 마중나와주었다. 처음 요스트를 보고 '아, 정말 네덜란드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도 네덜란드 친구가 딱 한명 있었다. 이름은 피터였는데, 요스트와 스타일이 비슷하고 키가 컸었다. 피터는 미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이모와 비행기 옆자리에서 만난 사람이었는데 이모의 부탁으로 나는 피터의 한국 가이드가 되어 준 일이 있었다. 삼청동에 있는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에 한국의 단팥죽을 선보여주려고 데리고 들어갔는데 아주머니들께서 "어이구, 잘 생겼네. 어쩜 어린 왕자 같아라"라고 감탄하셨었다. 그 당시 피터와 많은 대화를 하며 네덜란드 사람들의 말은 굉장히 직선적이고 단선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요스트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군대를 가기 전까진 인간관계도 좁고 사무적이라면 사무적이고 피상적이어서 직선적인 사람을 피하는 주의였었는데, 군에서 많은 사람을 겪고, (심지어 주님께서 내게 붙여준 군종병까지 '초'직선적 성향이었던 거.) 교회와 선교단체에서 상당히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있으며 그들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난 후로는 직선적인 사람을 어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 쪽이 더 편하게 대화하고 이것저것 신경쓰지 않아도 되어서 편할 때도 있는 것 같다. 단적인 예로, 나의 어머니가 있다.
아무튼, 네덜란드는 내게 정말 동경의 대상이었다. 군에서 나는 어머니에게 부탁하여서 네덜란드 여행 소책자를 소포로 받아 보았는데 (정확히는 암스테르담 지도 책자였다.) 끈끈하게 진득한 컬러의 주황색 하드커버에 고흐와 자전거, 풍차와 튤립의 사진들이 모던한 사각형 모양으로 잘 배열되어 있는 표지를 한 작은 책이었다. 두번 접힌 두꺼운 양장의 첫 페이지를 펼치면 커다란 암스테르담의 맵이 나오고, 다음 페이지는 제 1섹션(구역), 그다음은 제 2섹션, 3섹션... 이런 식으로 점차 구역들이 세분화되고 구체적인 명소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오래된 교회, 램브란트 하우스, 반고흐의 미술관, 안네 프랑크 하우스 (huis라고 하는데 홰스 정도로 입을 모으고 독일식 발음 o움나우트를 해주면 된다.) 등의 지명 표시와 사진이 가지런히 실려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 자유의 도시에 대한 동경을 처음 가지게 된 장소는 아이러니하게도 군 부대, 그것도 최전방 철책선에서 였다. 지도를 펼치면 가지런한 운하들과 촘촘한 스트랏(straat:거리street의 화란어)이 있었고, 지도를 덮으면 거친 철책로와 투박한 보급로가 있었다. 밤마다 주황색 투광등이 켜졌었고, 나는 그 투광등을 보며 상큼한 오렌지 색보다는 한겨울 단단하고 서릿한 귤의 표면이 떠올랐다.
근무가 끝나면 나는 내무실로 돌아와 귤색 활동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오렌지를 까듯이 그 암스테르담 지도 소책자를 펼치고 운하와 거리들이 가득한 책 냄새에 코를 박곤 했다. 자유, 자유의 도시. 네덜란드인들의 소박한 여유가 너무 간절했다. 자전거를 타고 저 운하들 사이를 누볐으면, 과일가게와 빠따뜨 (네덜란드 식 후렌치후라이) 가게를 지나 램브란트 하우스까지 달려봤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했었다. 하지만 밤이 되면 나는 다시 철책의 능선에 서야 했고, 건너편 능선에서는 북한군이 화전을 만들기 위해 능선 가득 지른 불이 배고픈 사자의 갈퀴처럼 이글거리고 있었다.
공항에서 기차를 타고 중앙역으로 오며 나는 통로에 앉아 있었다. 한국에서 온 사람과 네덜란드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 만큼은 혼자서 통로에 있고 싶었다. 일본에 처음 갈 때에도, 두 번째로 갈 때에도 그러했다. 나는 조용히 기차 안에서 지나가는-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할- 일본의 풍경을 관람하고 있었다. 후쿠오카에서 내가 그때 보았던 것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아이들 그리고 현대적인 건물과 오래되고 소박한 건물들이었고 간사이 공항에서 교토로 갈 때 보았던 것은 형광등이 가득 달린 빌딩들과 하얀색 가로등 그리고 성냥갑처럼 네모난 건물들의 끊임없는 행렬이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보았냐면, 나는 일본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네모낳고 모던한 건물들의 연속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무와 밭을 보았던 것 같다.
중앙역을 빠져 나오자마자 나는 셔터를 계속해서 찰칵거렸다. 중앙역은, 사진 그대로였다. 그래서 더욱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진에 있는 것과 그대로야, 봐. 중앙역은 공사중이어서 완전한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뷰파인더 안에 그 여백을 하늘로 채워넣었다. 네덜란드의 하늘이다. 네덜란드의 풍광이다. 유독 나는 네덜란드에 와서 구름을 많이 찍었던 것 같다.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이나, 야코프 반 루이스달의 할렘 풍경에서의 커다랗고 풍만한 구름을 그리워해왔기 때문에, 풍성한 구름이 보일 때마다 더욱 셔터를 눌렀다.
하얀 몸체에 푸른 줄무늬를 한 장난감같이 세련된 트램이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에서 네덜란드까지 실어온 우리의 집들을 버스에 싣고 Kadijksplein으로 향했다.
도착한 첫 날, 나는 내가 그리워하던 풍경 두가지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리워하던 램브란트를 만나 그의 발목을 붙잡고 사진을 찍었다.